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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서관/책에서 배운 글쓰기

함민복시인에게 배운 아름다운 우리말 & 카피 쓰는 법



함민복시인에게 배운 아름다운 우리말 & 카피 쓰는 법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 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 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맟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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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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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청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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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집에 그늘이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았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있었구나 

그들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이직하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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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천만 결 물살에도 배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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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여보시오___누구시유___
예, 저예요___
누구시유, 누구시유___
아들, 막내아들___
잘 안 들려유___ 잘.
저라구요, 민보기___
예, 잘 안 들려유___
몸은 괜찮으세요___
당최 안 들려서___
어머니___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___
두 내우 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___
예, 죄송합니다. 안 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___
전화 끊지 마세요___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___
두 내우 다 예, 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어들머려니서 털컥.


달포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쇠귀에 경을 읽어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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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착유기 공장을 떠나며...

좋은 시는 당신들이 내 가슴에 이미 다 써놓았잖아요
시인이야 종이에 시를 써 시집을 엮지만, 당신들은 시인의 가슴에 시를 쓰니 
진정 시인은 당신들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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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을 추억하며...

살고 있는 골목길을 접어들며 마음도 마음의 골목길을 접어든다
골목길에서의 생각은 타이트하다 구체적이다 현실적이다
넓은 길을 오며 이 생각 저 생각 들던 것이 길의 깔때기, 골목길에 접어들면 압축되고 요약된다
원래 삶은 그렇게 살아가는 길의 모양을 닮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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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년 전 근무하던 현장사무실 응축수에 빠져죽은 쥐를 떠올리며...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삼십 분 육십 분 구십 분-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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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신문사 인터뷰를 자랑스럽게 스크랩한 사촌형을 떠올리며...

나는 가족과 피붙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든다
서로에게 향긋한 냄새를 풍겨주는 것만이 아닌, 
시큰한 냄새가 나는 김칫국물자국을 서로에게 남겨주는 존재가 아닌가
나는 형의 가슴에, 형은 내 가슴에 엎질러진 김칫국물이 아닌가
어머니는 내게,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내게, 나는 아버지에게, 누나는...
그래 시큰한 김칫국물이 모여들어 딴 세상으로 떠난 김칫국물들을 그리워하는 명절이다
남겨주는 존재가 아닌가. 나는 형의 가슴에, 형은 내 가슴에

눈물은 왜 짠가02 中

눈물은 왜 짠가 (개정증보판)
국내도서
저자 : 함민복
출판 : 책이있는풍경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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